대략 20년전, 당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감독이었던 토니 라루사는 적은 점수차로 이기고 있는 경기의 9회에 팀내 불펜에서 가장 뛰어난 투수를 투입하여 승부를 결정짓는 1이닝 마무리 체제, '라루사이즘'을 도입했다. 이 작전은 성공적이었고, 다른 팀들도 라루사이즘을 모방하여 팀내 가장 뛰어난 불펜투수를 (3점 이내의 적은 점수차로) 이기는 경기의 9회에만 투입하게 되었다.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의 30세이브 투수는 1965년 처음으로 나왔고 1988년까지 4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투수는 단 5명이었다. 하지만 라루사이즘이 도입된 이후, 40세이브 기록은 더이상 찾기 어려운 기록이 아니게 되었다.

47세이브로 2007년 아메리칸리그 세이브 타이틀을 차지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마무리 조 보로스키의 시즌 평균자책점은 5.07이었다. 클로저 롤을 맡기에는 시원찮은 방어율이다. 그러면 어떻게 보로스키는 아메리칸리그 세이브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보로스키의 앞에 오는 투수들에서 찾을 수 있다. 그해에 베탄코트와 페레즈는 각각 79.1, 60.2이닝을 던지며 1.47과 1.78이라는 뛰어난 수준의 평균자책점을 찍어주며 보로스키의 스탯쌓기에 일조했다. 만일 그해에 보로스키가 마무리를 맡지 않고 중간계투진으로 갔다면? 결과는 여러분이 상상해 보시길 바란다.1

야구를 보다 보면 잘나가는 세이브 투수가 있는 팀은 주로 5할 승률 이상 거두는 강팀일 뿐더러, 마무리투수 못지않은 중간계투진이 있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오승환의 앞에는 '마당쇠' 정현욱이 있으며, 파펠본의 앞에는 오카지마가 있다. 또한 페레즈와 베탄코트의 보호를 받은 보로스키가 세이브 타이틀을 차지했던 2007년 클리블랜드는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우승팀이었지만 2010년 5월 20일 현재 센트럴리그 꼴찌를 달리고 있는 야쿠르트의 클로저 임창용은 현재 '개점휴업' 상태다.

세이버매트릭스의 대부 빌 제임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1이닝 마무리 체제보다 8회건 9회건 간에 경기의 승부처에서 팀내 최고의 마무리투수를 투입하는게 낫다는 주장을 했다. 이는 불펜 에이스가 위기상황에 여차하면 나와서 막고 들어가는것이 9회 세타자만 상대하고 경기를 끝내는것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말이다.

2003년 보스턴 레드삭스는 이러한 빌 제임스의 주장에 따라 지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던 라루사이즘에 반기를 드는 시도를 했다. 바로 '집단 마무리' 체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실패했다. 보스턴의 불펜은 시즌 초부터 불쇼를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도 중단되지 않는 불놀이를 잠재우기 위해서 보스턴은 추가적인 선수 영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빌 제임스의 주장이 틀렸기 때문에 실패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레드삭스의 집단 마무리 체제가 실패한 이유는 단순히 불펜에서 믿을 만한 불펜투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003년의 라미로 멘도자나 토드 존스, 앨런 엠브리 같은 친구들이 7,8회의 위기상황에 믿고 맡길 만한 투수라고 할 수 있었을까? 2007년의 보로스키가 2003년 보스턴에 있었다면 세이브 타이틀은 커녕 제대로 된 세이브 기회조차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야구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스포츠다. 라루사이즘이 10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만에 메이저리그에서 상식으로 통했듯이, 불펜에이스를 운용하는 좀 더 나은 방법과 불펜 에이스에 대해 세이브나 홀드따위의 스탯보다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가 지표-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쓸 생각이다-가 대중화된다면 라루사이즘은 그것이 전파됐던 속도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야구계에서 사라질 것이다.

  1. 더 잘됐을 수도, 더 망했을 수도 있다. [Back]
2010/05/21 05:54 2010/05/21 05:54
확률분포 이 작성.

Trackback URL : http://kin3245.nterz.net/tc/trackback/311

Trackback RSS : http://kin3245.nterz.net/tc/rss/trackback/311

Trackback ATOM : http://kin3245.nterz.net/tc/atom/trackback/311


당신의 의견을 작성해 주세요.

  1. Comment RSS : http://kin3245.nterz.net/tc/rss/comment/311
  2. Comment ATOM : http://kin3245.nterz.net/tc/atom/comment/311
  3. 影猫 2010/05/22 08:06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집단 마무리 체제는 현재 삼성이 사용하고 있죠.
    작년에 이은 돌부처 오승환의 재부진으로 권혁, 권오준, 정현욱을 돌아가면서 쓰더라구요.

    • 확률분포 2010/05/23 04:21  편집/삭제  댓글 주소

      음 사실 빌 제임스가 말한건 마무리투수들이 세이브갯수를 돌려막는게 아니라 굳이 불펜에이스를 세이브기회에만 등판시키지말고 승부처에서 언제라도 투입하라는 거였으니 집단마무리라는 용어는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되네여..

[로그인][오픈아이디란?]
« Prev : 1 :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 30 : Next »